2006년 5월 22일 베를린 포스트반호프 공연리뷰(KUBB, The Feeling, Razorlight)
다정다감한 개구장이 같던 베이시스트 칼 델리모(Razerlight) 그리고 친절하면서도 도통 말 수가 없었던 도미닉 그린스미스(KUBB의 드러머)와 이어진 두 번의 만남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새로 시작된 밴드의 불안과 희망이 섞인 두근거림이었다. 하나의 밴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연의 일치가 필요하다. 백수 삼촌이 기타를 쳤다던지, 옆 반 음악을 좋아하는 여자애의 환심을 사고 싶었다던지 하는 우연들이 개인적으로 끝나지 않고 또다시 서로 마주쳐야 한다. 물론 밴드가 이렇게 저렇게 결성되었다는 사연들이 앨범내지(부클릿)에 실리면 (남의 연애가 그렇듯) 뻔하게만 들리고 만다고 해도, 우연과 그 우연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한 밴드가 만들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시작된 밴드에 어느새 팬들이 모이고 급기야 아직 가보지도 못한 먼 나라 한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장면.
그들의 표정은 이런 저런 얘기를 쏟아내면서도 거듭 ‘우리는 얼마나 더 해낼 수 있을까?’ 혹은 ‘우리는 아직 들려주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불안이었든 희망이었든 간에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까지 함께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이 점이야말로 대중음악 특히 락 음악의 특별함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많은 경우 음악을 전달하는 연주자(심지어는 그 작곡자)와 ‘음악 자체’가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락 음악에서 음악과 음악가는 그리고 아티스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청중은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비이성적인 몰입이라고 폄하하기 전에 바로 그 몰입, 하나됨이 음악에 있어 얼마나 본질적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정보다 늦어진 인터뷰로 첫 번째 Boy Kill Boy의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동 베를린 지역의 공연장 포스트반호프(Postbahnhof)에 도착하게 되었다. 20여분의 세팅을 하는 동안 공연장을 둘러보니 보도자료대로 900여명이 넉넉히 들어설 만한 공간에 음료수 바, 건물 안의 넓은 정원이 연결되어 있다.
먼저 KUBB의 무대.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앨범이 팝 적이고 세련된 느낌이라면 그들의 라이브는 이들도 결국 밴드음악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집에서 휴식하는 느낌으로 듣던 곡들이 이렇게 찌릿찌릿한 락 넘버일 줄이야! 락 음악 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펜더 텔레캐스터와 깁슨 레스폴 스탠더드 기타, 그리고 비틀즈에서 퀸 그리고 U2까지 무수한 밴드들의 영국 특유의 사운드를 담당해온 Vox AC30 앰프가 무대에 보였다. 첫 연주 I Don’t Mind가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어느새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음악에 열심히 반응했다. 보컬 겸 베이스기타의 해리 콜리어의 미성이 빛을 발한 Without You에서 Grow로 이어지는 선곡에서 여성청중 몇몇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 받기도 하였다. 듣다 보면 외워지는 Wicked Soul에 대한 뜨거운 반응도 볼 수 있었다. 앨범에서도 그랬지만 내게는If I Can’t Have You와 Somebody Else가 특히 즐거웠다. 부드러움 이면에 감춰진 상처 혹은 악마성이 느껴진다고 할까? 첫 앨범에서 이미 달성한 대중성에 앞으로 어떤 깊이를 더해갈지 더욱 궁금해졌다.
… 프로모션 공연임에도 밴드에 따라 전 장비를 다 교체하는 철저함! KUBB의 연주가 끝나자 복스 앰프의 자리에는 (역시 영국산) Matamp 두 대가 들어오고 “The Feeling”이라고 찍힌 드럼세트가 제 자리를 잡았다.
영국의 인디펜던트 지와의 인터뷰를 보면 이 밴드는 자신의 정체성이 ‘팝’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무척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각한 척 무게를 잡거나 쿨한 척 멋지게 구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팝음악을 하는 것에 목표를 두면서, 자신들은 팝 밴드일 뿐 ‘인디 밴드’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려고 애쓰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하며 전혀 비꼬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그들의 음악이 정말 제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공연감상을 적자면The Feeling은 한마디로 무척 재미있는 밴드이다. 곡들의 짜임새에서나 라이브 모습에 있어서나 말이다. 6월에 발매될 예정인 첫 앨범 [Twelve Stops And Home]의 수록 곡들이 연주되는 동안 ‘이 익숙한 느낌은 무엇일까?’하고 묻게 되었다. 이미 싱글발매로 귀에 익숙한 곡들이 있어서일까? 내 결론은 (The Feeling이 고백하듯) 비틀즈, 수퍼트램프, 아하(A-ha)(!)와 같은 음악적 선배들의 팝 음악의 규칙들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이다. 위 밴드들의 음악이 쉽게 들리는 것 같지만 거듭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은 그 음악이 대중의 기대를 만족시키면서도 이를 상회하기 때문이 아닐까. ‘팝’이 대중적이라는 의미를 넘어 보편적인 수준에 이르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The Feeling이 그 곳에 이를 수 있을까? 최소한 그들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다.
자신들의 ‘함부르크 시절’에 해당할 업소 공연에서 밴 헤일런을 연주했던 것을 패러디라도 하듯Love It When You Call에서 Jump의 느낌을 영국식으로 소화하는 광경은 웃음을 자아낸다. Fill My Little World에서는 심지어 아카펠라까지 나온다. 섬세한 기타 스트로크에 부서질 것 같은 노래가 실리며 시작되는 Sewn을 ‘들으면’ 더 이상 이들의 재능을 의심할 순 없을 것이다. 거기에 그 연주를 ‘본다면’ 그들이 얼마나 역동적인 무대를 만드는지에 놀랄 것이다. 안무담당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농담(일까?)을 주고 받았을 정도로 이들의 라이브는 재미있다. ‘인디밴드’가 아닌 이상 다이빙이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해도.
The Feeling이 비틀즈를 존경한다고 하지만 그들보다 Razorlight가 비틀즈에게서 더 많이 물려받은 면모가 있다면 그것은 ‘시(詩) 적’이라는 미덕이다. 유치하지만 굳이 나누자면 각각을 매커트니와 레논에 비교해 볼 수도 있겠다. 앨범을 들을 때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또 커다란 마샬과 레이니 앰프를 세워놓고도 오히려 Razorlight는 크지 않은 음량을 유지하면서 비교적 정적으로 공연을 이끌고 갔다. 그런데도 그 음악에 청중들이 갈수록 빠져든다. 아까까지 꿈쩍도 않고 무대를 바라보던 한 청년도 무엇에 홀린 듯 몸을 흔들어댄다. 진실 혹은 진심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락 밴드 보컬이면서도 밥 딜런과 자신을 비교했던 조니 보렐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공연의 절반은 데뷔작 [Up All Night] 수록 곡으로 나머지는 곧 발표되는 2집 곡들로 이루어졌다. Vice, Rock’n Roll Lies, Stumble and Fall, Dalston, In the City 등의 기 발표곡들이 연주되자 처음으로 음악을 듣던 이들이 진짜로 ‘놀기’ 시작했다. 뒤이은 싱글 Somewhere Else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새 앨범의 곡들은? 글쎄, 앨범이 나오면 다시 들어보고 써도 될까? 워낙 정신 없이 지나가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