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birth of a dream

February 27, 2009

1.0. Prolegomena

Filed under: 바움가르텐, 감성학(Aesthetica) — yheejean @ 9:59 am

§1
AESTHETICA (theoria liberalium atrium, gnoseologia inferior, ars pulchre cogitandi, ars analogi rationis) est scientia cognitions sensitivae.

§2
Naturalis facultatum cognoscitivarum inferiorum gradus solo usu citra disciplinalem culturam auctus AESTHETICA NATURALIS dici potest et distingui, sicuti logica naturalis solet, in connatam, ingenium pulchrum connatum, et acquisitam, et haec denuo in docentem et utentem.

§3
Ad naturalem accedentis artificialis aesthetices (§1) usus inter alios maior erit 1) scientiis intellectu potissimum cognoscendis bonam materiam parare, 2) scientifice cognita cptui quorumvis accommodare, 3) cognitionis emendationem etiam extra distincte cognoscendorum a nobis pomeria proferre, 4) bona principia studiis omnibus mansuetioribus artibusque liberalibus submisnistrare, 5) in vita communi, cetera si paria fuerint, in agendis rebus omnibus praestare.

§4
Hinc usus speziales 1) philologius, 2) hermeneuticus, 3) exegeticus, 4) rhtoricus, 5) homileticus, 6) poeticus, 7) musicus e. c.

§5
Obici posset nostrae scientiae (§1) 1) eam nimis late patere, quam ut uno libello, una acroasi posit exhauriri. Respondeo concedendo. Sed praestat aliquid nihilo., 2) eam eandem esse cum rhetorica et poetica. Resp. a) latius patet, b) complecitur his cum aliis artibus ac inter se communia, quibus hic loco convenient semel perspectis quaelibet ars sine tautologiis inutilibus suum fundum felicius colat, 3) eandem esse cum critia. Resp. a) est etiam critica logica, b) quaedam critics species est pars aesthetics, c) huic praenotio quaedam aesthetics reliquae paene necessaria est, nisi velit in diiudicandis pulchre cogitates, dictis, scriptis disputare de meris gustibus.

§6
Obici posset nostrae scientiae 4) indigna philosophis et infra horizontem eorum esse posita sensitiva, phantasmata, fabulas, affectuum perturbationes e. c. Resp. a) philosophus homo est inter hominess neque bene tantam humanae cognitionis partem alienam a se putat, b) confunditur theoria pulchre cogitatorum generalis et praxis ac exsecutio singularis.

§7
Obi. 5) Confusio mater erroris. Rsp. a) sed condition, sine qua non, inveniendae veritatis, ubi natura non facit saltum ex obscuritate in distincionem. Ex nocte per auroram meridies, b) ideo curanda est confusion, ne inde errors, quot et quanti penes incurios, c) non commendatur confusion, sed cognition emendatur, quatenus illi necessario admixtum est aliquid confusionis.

§8
Obi. 6) Cognitio distincta praestat. Rsp. a) apud finitum spiritum tantum in gravioribus, b) unius position non est alterius exclusion, c) ideo secundum regulas distincete cognitas directum imus pulchre cognoscenda primum, ex quibus eo perfectior aliquando surgat distinctio (§3, 7).

February 26, 2009

1.0. 서언 (序言)

Filed under: 바움가르텐, 감성학(Aesthetica) — yheejean @ 2:14 pm

(아래의 번역은 계속 수정되고 있으므로 다른 곳으로의 인용이나 복사는 삼가 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라틴어원문을 함께 올립니다. 번역에 대한 좋은 지적도 부탁 드리겠습니다. – 이진)

 

1.0. 서언(序言)

 

§1
애스테티카[aesthetica: 감성학/미학. 이하 역주1 참조]([또는] 자유학예의 이론, 하위 인식론, 아름다운 생각[사유]의 기예[기술], 유사[유비]이성의 기술)는 감성적 인식의 학문(scientia)이다.

 

§2
훈육적[=훈육/연구/수업을 통해 얻어진disciplinalis] 교양 없이도 단지 [바로 그 능력의] 사용을 통한 하위 인식능력의[이] 자연적 증대[되는 것을]를 자연(적) 미학으로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자연(적) 논리학에서 그러하듯, 이를 태생적(본유적) 미학 다시 말해 태생적인 미적 능력과 습득된[후천적] 미학으로 나눌 수 있으며, 다시금 후자는 가르치는 미학과 응용하는[사용하는] 미학으로 구분될 수 있다.

 

*역주1
§1의 정의에서 보이는 것처럼, 바움가르텐이 파악하는 ‚애스테티카’은 학문이자 기술로서 이론과 실천의 두 측면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인간의 ‚자연적 상태’(naturalis를 체사(體詞)로 보고 auctus를 주격 보어로 볼 경우. 혹은 위 번역처럼 naturalis
auctus를 – naturalis에 대한 직접 수식으로auctus를 해석하여 – 함께 속하는 것으로 볼 경우에는 하위 인식능력의 ‚자연적 증대’) 도 §2에서 제시된 조건을 만족할 경우 감성학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미학이 인간이 만들어낸 특정한 학문의 지류이기 이전에, 인간의 자연적 상태의 한 양상을 가리킨다는 이와 같은 관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애스테티카에 대한 보다 적절한 번역어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동 개념은 과거에는 통상 특별한 숙고 없이 일본식 번역을 따라 ‚미학’으로 옮겨졌지만, 근간 볼프강 벨쉬(Welsch)등이 주도한 ‚감성론적 미학’이라는 새로운 논의지평 속에서 바움가르텐의 동 저서를 인용하는 경우에 특히 기존의 미학 논의와의 구별을 위해 본 개념(이자 동 저서의 제목)은 ‚감성학’으로 옮겨지고 있다.
애스테티카는 우선 감성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자연적으로 주어진 감성에 대한 인간의 자기 인식의 영역에 속한다. 즉, 애스테티카는 한편으로는 감성의 기예[기술, 혹은 작동 양태modus]이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감성에 대한 앎으로서의 감성학이다. 그러나 감성학이라는 번역어는 최소한 아직까지는 애스테티카에 담긴 실천적 측면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단점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학문과 실천이라는 두 영역으로 엄격하게 구분된 한국어의 용법에서 어떻게 이러한 의미를 동시에 포섭할 수 있을 것인가?
지적했듯이, ars 혹은 techne가 무엇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으로서의 ‘실천적 앎()’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번역의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볼 때 우리말에서 ‘미학’이란 단어가 일상에서 (학문적인 고려와 무관하게) 사용될 때,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 수행의 효율성 이상으로 감성적 가치를 살리는 방식으로 일이 이루어질 때를 지칭하는 “~의 미학”의 용법으로 쓰고 있다는 점은 (그 표현이 실제로 사용되는 사회적 맥락의 얄팍함은 일단 차치한다면)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일상적 언어가 학문의 목표를 선취했다고나 할까? 삶의 면면을 적절히 표현해야 할 중차대한 필요에 의해 등장한 일상어로서의 ‘미학’의 의의를 학문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철학을 비롯한 전문분야의 용어가 일상의 맥락과 어떻게 맺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선택되거나, 심지어 언제부턴가는 (컨버전스, 유비쿼터스 또는 영미철학에서의 ‘토큰’과 같은 용어에서처럼) 외국어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 우리말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현실에 큰 책임이 있다고 보기에, 이러한 맥락에서 잠정적으로나마 (아이러니하지만) 다시 ‘미학’을 애스테티카의 번역어로 선택한다. [
외국어의 무분별한 수용이 자국어의 언어적 생산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다음의 엮은 글 참조: http://yheejean.tistory.com/entry/%EC%99%B8%EA%B5%AD%EC%96%B4-%EB%82%A8%EC%9A%A9-%ED%98%84%EC%83%81%EA%B3%BC-%EB%AA%A8%EA%B5%AD%EC%96%B4%EC%9D%98-%EC%83%9D%EC%82%B0%EB%A0%A5-%EC%86%8C%EB%A9%B8 ]

 

 

§3
자연적 미학(§1)에 추가되는 인위[예술적/인공적/인위적 artificialis] 미학의 중요한[maior, 더 큰] 효용은 다른 것 중에서도 이하와 같다: 1) [인위 미학은] 지성을 수단으로(intellectu) 탐구되는 학문들(scientiis cognoscendis)에 적합한 재료를 부여하며, 2) (상기한) 학문을 통해 인식된[파악된] 것을 어떤 사람이든지 막론하고 그가 받아들이기captui[capio, captus의 제2격은 capi, 제3격은 capto. 만일 Captus, -us가 있다면 3격일 텐데? Schweizer 번역에서는 파악능력Fassungsvermögen으로 옮김]에 적절하게 만들며, 3) (그) 인식의 개선을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들의 경계 너머까지도 더욱 밀고 나가며, 3) 적절한 원칙[기초]을 모든 여유 속에 행해지는(mansuetioribus: gelassener. S는 kontemplativ로 옮김) [정신적] 활동 및 자유학예에 제공하며, 4) 공공의 삶 속에서, 그 외의 일들이 적다 해도[그 외에 해당하는 일들이 드문 것은 물론이거니와], 해야 될(agendis) 일들에서 다른 모든 이들보다 두각을 나타내게 한다.

 

§4
여기에서 그 특별한 효용이 나오는데, 즉 1) 문헌학적 효용, 2) 해석학적[또는 설명에 있어서의 hermeneuticus] 효용, 3) (성서)해석적[exegeticus] 효용, 4) 수사학적 효용, 5) 설교학적[homileticus] 효용, 6) 시학적 효용, 그리고 7) 예술적[musische] 효용 등이다.

 

§5
우리의 [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1) 미학은[그것은] 단지 한 저술이나 한 강연으로써 근본까지 다루어지기에는 너무 넓은 영역에 걸쳐있다. 나는 [이점을 일면] 인정하는 한편(concendendo)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러나 얼마간이라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낫다. 2) 미학은[그것은] 수사학 및 시학과 동일하다. 나는 답한다. a) 그것[미학]은 [수사학 및 시학보다도 오히려] 더욱 넓은 영역을 포괄하며, b) [미학은] 이들[수사학 및 시학]이 다른 기예[분과]들과 공유하거나 또한 이들 [양자] 간에 공유하는 것[대상]을 고찰[포함complector]하기에, 후자에 대한 자세한 관찰에 힘입어(quibus perspectis in Abl. Abs.) – 이에 대해 이 책에서는[hic: 여기에서는] 적절한 곳에서 [다룬다] – 어떠한 기예[분과]라도 무익한 [동어]반복 없이 더욱 성공적으로 자기 기초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3) 미학은[그것은] 비평[critica, 비판]과 동일하다. 나는 답한다. a) 미학은 논리적 비평[비판]이기도 하며, b) 비평의 어떤 특정한 종류는 미학의 일부분에 속하는데 [ML 단어들. 성/수 일치?], c) 그[=미학의 일부분]를 위해서[도] 미학의 그 나머지 [범위, 분야]의[를 아우르는] 어떠한 선행적 개념(praenotio)은, 만일 우리가 [무엇이] 아름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쓰여진 것들에 대한 판단에 있어 순전한 취미[gustibus]에 대해 논하고 말 것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결하다.

 

§6
우리의 학문에 대해 [또한] 1) 감각적인 것[감각의 대상sentitiva], 상상[의 대상phantasmata], 이야기(시작, 詩作)[의 대상fabulas] 및 정동 [정서 affectuum]의 뒤섞임은 철학자[들]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그(들)의 지평 바깥(아래)에 놓여 있다고 하는 반론이 가능하다. 나는 답한다. a) 철학적 인간[hominus philosophus]도 [다른] 인간들 가운데 존재하기에, 그가 [감각적인 것 등을 포함하는] 인간 인식의 그렇게 많은 부분을 자신과는 무관한[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으로 믿는 것은 옳지 않고, c) [철학자들의 전제 속에서] 아름답게 사유된 것들의(pulchre cogitatorum) 일반적인 이론이 개별적인 것의 실행(praxis) 및 완수(exsecutio)와 혼동되고 있다.

 

§7
혼연함(confusio – *추가될 역주를 참조.)는 오류의 어머니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나는 답한다. a) 하지만, 자연이 혼연함에서 판명함으로(in distintionem) 도약(saltum)을 하지 않을 때마다[ubi: Schweizer는 인과관계 da로 번역], [혼연함은] 진리의 발견[발견되어야 할 진리들inveniendae
veritatis]의 필요조건(conditio sine qua non)이다. 밤은 서광(曙光)을 거쳐야만 정오가 되며, b) 그러므로 혼연함에 주의가 기울여져야 하는데, 그로써 오류들이 [혼연함에 대한 주의에 있어] 소홀했던 이들만큼 많거나 크지[심하지]는 않을 수 있을뿐더러, c) [미학의 논의는] 혼연함을 권장[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식을 개선하려는 것인데, 왜냐하면 후자[인식]에는 필연적으로 혼연함의 부분[어떤 것aliquid]이 혼합[추가]되기 때문이다[Schweizer와 Mirbach는 모두 quatenus를 "~하는 한soweit, insofern"으로 옮겼다.]

 

§8
판명한 인식이 우월하다라고 반론할 수 있다. 나는 답한다. a) [판명한 인식이 우월한 것은] 유한한 정신에 있어서만 그러하고[역주2] [이 점도] 오직 더욱 중요한 사안들에 국한하여 그러하며[역주3], b)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다른 것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역주4]. c)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판명한 인식의 규칙에 따라 아름답게 인식될 수 있는 것들로 나아가고, 그 결과 그로부터 더욱 완전한 판명함이 도출된다.

 

*역주2
판명한 인식과 혼연한 인식은 대상 자체의 성질에 따라 전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대상을 파악하는 주체의 인식 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가에 달린 상이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절대자인 신과는 달리 유한한 정신, 혹은 유한지성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전제 하에서만 판명한 인식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주3

이러한 논리에 따르자면, 판명한 인식을 반드시 요구하는 ‚더욱 중요한 사안들’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면, 그 범위 안에서 혼연한 인식과 판명한 인식간의 우열은 인정되지 않는다.

*역주4

즉, 판명한 인식과 혼연한 인식의 관계는 상보적이다.

 

(계속)

 

[마지막 수정: 200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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