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birth of a dream

February 26, 2009

어리석음 연작 03.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음(Disparate Ridiculo)

Filed under: 고야(Goya) — yheejean @ 2:19 pm

방랑과 궁핍에 시달리는 이들이 간신히 택한 보금자리는 왜 하필 썩어버린 나무 가지 위 인가.

나는 고야가 어리석음을 그릴 때 결코 조롱하는 웃음을 짓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

고통 받는 자의 어리석음을 바라보는, 마찬가지로 고통에 가득 찬 시선을 느낀다.

“…the dark paintings belong to the great Disparates.The subtlest of these, Strange Madness, plays on the precariousness of life, suggested by the branch of the dead tree, on the cadaveric face of one of the women, on the owl’s face of another, on the group’s resemblance to a nest of night birds, on the strangeness of the meeting, of the garrulous hand, and of the check pattern of the shawl, and lastly on sleep and night with the pallid dash of colour below that hints at the moon …Let us not forget the part played in the story by the hand – - where fate is written – - and by the birds of night, which symbolize or accompany the Devil. The Family of Charles IV would be less disturbing if the face of the Queen did not rise above it like an owl’s head.”

Andre Malraux Saturn: An Essay on Goya, Phaidon Publishers 1957, page 142.

어리석음 연작 02. 공포의 어리석음(Disparate de miedo)

Filed under: 고야(Goya) — yheejean @ 2:18 pm

형용할 수 없이 무서운 것 그리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 이들.

하지만 공포의 대상이 불분명할 때 그 두려움은 어리석음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고야, 어리석음 연작 01. 여인의 어리석음(Disparate Femenino)

Filed under: 고야(Goya) — yheejean @ 2:16 pm


 

 
 


 
 

 
 


 
 


에칭으로 완성된 작품(1,2)
부분확대(3), 그리고
작업단계의 습작(4)

 
 

 
 


 어리석음 연작의 첫 번째 작품인 ‘여인의 어리석음’(맨 위의 두 판화)은 널리 알려진 마티스의 그림(바로 위)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연상 작용은 우선 여인들이 손을 맞잡고/포대기를 부여잡고 둥글게 둘러서 있는 구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은 인물들이 자신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보이는 도취상태가 두 작품 모두에서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마티스의 그것이 보는 이까지 함께 열락에 잠기게 하는 그런 종류의 도취라면, 고야의 그것은 당혹감을 불러 일으킨다.

 여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무척 위험할 수도 있음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아이들을 허공 높이 던지고 다시 받는 ‘놀이’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든다. 한편 준비 단계의 그림에서 보이는, 음침한 눈길로 여인들을 지켜보는 군중(오른쪽 뒤편. 그런데 여인들은 그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은 인물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어떤 분위기 혹은 감정 자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즉 이는 완성된 작품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전달하는 전망 혹은 희망의 부재와 동일하다. 습작의 군중은 이런 의미에서 완성작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어둠으로서 남아있다.

 이러한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은 인물 뒤에 보이는 견고한 수평선으로 다시 한번 강화된다. 이점은 마티스의 그림에서 희망과 재생의 빛깔, 맑고 푸른 파랑과 초록으로 칠해진 하늘과 대지는 벌거벗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는 듯 이들을 감싸고 있는 것과 또 한번 대조적이다. 

 아무튼 두 화가의 그림에서 묘사된 여인들의 움직임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다. 기쁨에 가득 차 있건, 자기파괴적 감정에 사로잡혀 있건 간에.

고야, “허공에 떠있는 마녀들” (Vuelo de brujas/Flug der Hexen 1797-98)

Filed under: 고야(Goya) — yheejean @ 2:15 pm



이 그림을 본 나의 첫 인상은 이랬다. 고야가 무대미술 혹은 (더욱 바라건대) 무용의 안무를 맡는다면 정말 멋지겠군!!  그림이 전달하려는 이야기나 내용(이라는 것이 ‘그림’이라는 매체 자체와 분리될 수 없다는 데에서 예술 작품의 특수성이 있겠지만)을 고려하기 이전에, 표현된 인물들이 취하는 자세와 움직임, 요소들의 배치를 접하는 순간 이미 그 환상 속에 빨려들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어디에서 이러한 흡입력이 생기는 것일까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았다. 고야는 빛과 어둠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도록 그렸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내용적으로, 다시 말해 그림을 이루는 요소들의 ‘입장’ 간의 강한 대비가 시각적인 차원 안으로 녹아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어느 깊숙한 어둠에 잠긴 산속의 언덕 위에 흰 망토를 덮어쓰고 두 손을 앞으로 치켜든 한 남자가 보인다. 이 망토는 그 바로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빛을 가리느라 눈부시게 반사되고 있다. 빛은 허공에 붕 떠있는 마녀들 그리고 그녀들이 지탱하고 있는 벌거벗은 남자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이외의 모든 사물은 칠흑 같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 이 망토는 아무래도 그 빛을 가리기 위한 것 같다. 고개마저 내리깔고 아마도 눈은 꾹 감은 채 남자는 당시 스페인 농촌에서 악마를 쫓아낸다고 믿어지던 불경한 손 모양을 한 상태로 도망치고 있다. (X선을 사용한 연구에 따르면 고야는 원래 이 인물을 등을 돌린 채 언덕으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으로 그렸다가 다시 지금처럼 고쳐 그렸다고 한다.) 그의 동료인 듯한 뒤편의 인물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자신을 유혹하는 주문 소리를 두려워하며 귀를 틀어막았다.

 여기에서 더욱 재미있는 것은 전통적으로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당나귀의 묘사이다. 당나귀는 어둠 속에서 감히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 눈이 어둠 속에 묻혀있는 것이 보이는가?  이러한 발견은 이 그림을 ‘사악하고 부정한 마녀들의 출현에 공포에 떠는 농부들’로 읽으려 했던 애초의 해석에 의문을 낳게 만든다.

 이와 같은 새로운 관점은 ’허공에 떠있는 마녀들’과 그 가운데의 벌거벗은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는 가운데 강화된다. 마녀들의 볼이 부풀어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남자에 대해 (빨아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불어넣고 있다. 일견 마녀에 사로잡혀 발버둥치는 것 같은 남자의 표정과 동작도 이렇게 보면 열락에 도취된 모습이다. 마녀들이 쓰고 있는 (주교나 교황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고깔을 장식하고 있는 뱀 무늬는 당나귀와는 반대로 ‘지혜’의 상징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을 마녀로 보느냐 혹은 참된 진리(‘자연의 빛’은 이성의 다른 이름이다)를 전달하는 자로 볼 것이냐라는 관점 간의 충돌이 그림 안에서 그리고 그림 밖에서 일어난다. 나는 망토를 뒤집어쓴 남자가 빛으로부터 어둠으로(어둠으로부터 빛으로가 아니라!) 도망치고 있다는 점에서 후자의 해석에 기울게 된다. 일부 연구자들은 심지어 이 그림에서 고야가 프리메이슨의 입회식을 암시한 것은 아닌가 짐작한다.

 
 

(* 2005년 베를린 고야전시회의 도록에서 스캔. 논의도 일부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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